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프리킥 앞에서 두 발을 넓게 벌리고 골문을 노려보며 심호흡을 했지만, 정작 공을 찬 건 옆에 서 있던 누누 멘드스였다. 우즈베키스탄 골키퍼는 호날두의 오른발을 의식해 몸이 왼쪽으로 쏠려 있었고, 멘드스의 왼발 슈팅은 그대로 골문을 갈랐다.
핵심 요약
세트피스 역할은 배달자, 주공격수, 스크리너, 엣지 담당, 리스트 디펜스 다섯 갈래로 나뉜다.
포르투갈은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호날두를 미끼로 세우고 멘드스가 기습 슈팅을 때리게 했다.
이 장면의 설계자는 지난 2월 포르투갈에 합류한 애스턴빌라 세트피스 코치 오스틴 맥피다.
메시는 아르헨티나 프리킥을 전담하고 손흥민은 한국의 프리킥 옵션으로 지정돼 있다.
미끼가 실제 키커보다 주목받는 이유
이 장면의 설계자는 지난 2월 포르투갈 대표팀에 합류한 오스틴 맥피 코치다. 본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애스턴빌라의 세트피스 전담 코치이고, 빌라는 지난 시즌 세트피스로만 29골을 넣어 아스널과 함께 유럽 공동 1위에 올랐다.
우즈베키스탄전 네 번째 골도 같은 방식으로 짜여 있었다. 브루누 페르난드스는 코너킥에서 동료들에게 바깥쪽으로 손짓해 아웃스윙을 꾸몄지만, 실제로는 공격수 두 명을 골문 가까운 쪽으로 보내고 낮고 빠른 킥을 그쪽으로 처리했다. 혼란에 빠진 수비 사이로 공이 흘러 상대 자책골로 이어졌다.
코너킥 한 번에 들어가는 다섯 개의 역할
유럽 클럽들이 정리하는 세트피스 조직은 대략 다섯 갈래로 나뉜다. 공을 차는 배달자, 니어포스트·중앙·파포스트 같은 정해진 구역을 공략하는 주공격수, 수비수의 진로를 막아서는 스크리너, 박스 밖에서 세컨볼을 노리는 엣지 담당, 그리고 역습에 대비하는 리스트 디펜스다.
수비 쪽에서는 존 마킹과 맨마킹을 섞어 쓰는 팀이 많다. 니어포스트 같은 핵심 구역은 자리를 지키는 선수가 맡고, 상대의 최고 헤더 자원은 별도로 전담 마크를 붙이는 식이다. 아스널은 한 선수가 니어포스트 쪽으로 침투해 존 수비수의 판단을 흔들고, 다른 한 명은 늦게 중앙으로 들어가며, 또 다른 선수는 골키퍼의 시야를 가리는 식으로 층을 쌓는다.
리스트 디펜스도 팀마다 다르게 짠다. 맨체스터 시티는 세트피스 직후 클리어링이 박스 밖으로 흘러도 곧바로 다시 압박할 수 있도록 선수 여럿과 깊은 미드필더 한 명을 남겨 두는 편이다. 인테르는 공중 경합에 특화된 선수에게 배달 각도를 맞추고, 블로커와 늦게 들어오는 선수를 섞어 수비가 한 명씩 다 따라잡지 못하게 만든다.
헤더 싸움이 전부라는 오해가 갈리는 지점
팬들 사이에서 세트피스는 결국 누가 가장 높이 뛰느냐의 문제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 번의 큰 헤더보다 움직임과 타이밍, 첫 번째 접촉이 실패했을 때의 커버 구조가 성공을 가른다. 미끼 역할이 시선을 끌고 스크리너가 진로를 막아 줘야 지정된 공격수가 자유로운 상태로 공을 받는다.
세트피스에 의존하는 팀은 강팀만이 아니다. 프랑스와의 조별리그를 앞두고 이라크는 라인을 낮게 내리고 역습과 세트피스로 득점 루트를 좁히는 전략을 준비했고, 공중볼에 강한 아이만 후세인이 코너킥과 프리킥에서 핵심 변수로 꼽혔다.
월드컵 킥커는 누구에게 맡겨졌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4강전에서도 코너킥은 승부를 갈랐다. 후반 잉글랜드가 수비벽을 두껍게 쌓자 리오넬 메시는 오른쪽 윙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가 올린 코너킥을 엔소 페르난데스가 85분 페널티 박스 밖에서 슈팅으로 연결하며 동점을 만들었다.
이런 장면이 우연이 아닌 이유는 대표팀마다 프리킥과 코너킥 키커가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메시는 아르헨티나의 프리킥을 전담하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포르투갈에서 여전히 페널티를 맡으며, 손흥민은 한국의 프리킥 옵션으로 지정돼 있다.
세트피스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
투자가 몰리는 배경에는 숫자가 있다. 스포츠 매체 ESPN이 조별리그 초반 100골을 분석한 결과 19골이 세트피스에서 나왔다. 다섯 골 중 한 골꼴로 코너킥과 프리킥이 스코어보드를 바꾼 셈이라 코치들이 별도 전담 인력까지 배치하는 것이다.
다음 코너킥에서는 공을 받을 선수보다 먼저 골문 앞에서 시선을 끄는 선수와 수비수의 진로를 막아서는 선수를 눈여겨보자. 판정이나 결과보다 그 두 움직임이 세트피스가 어떻게 짜였는지를 먼저 보여준다.